1983 Apple History
Lisa와 Apple IIe가 발표되고 John Sculley가 CEO로 합류했으며,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와 교육 시장 전략이 Apple의 다음 단계를 열었습니다.
1983년도 애플의 역사입니다.
1월
AppleIIe라는 신기종 및 여러 주변 기기와 함께, 새로운 개념의 컴퓨터인 리자(Lisa)가 발표되었다. 리자는 잡스의 딸

이름으로 1MB의 램과 16KB의 롬을 탑재한 모터롤라 68000 프로세서를 장착하고 현 매킨토시의 원형을 이룬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탑재하고 마우스를 사용하였다. 1970년대에 제록스(Xerox)사의 팔로 알토(Palo Alto) 연구소에서 창출한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용량의 메모리와 빠른 처리 속도가 필요했는데, 80년대에 들어 애플사에 의해 리자가 탄생됨으로써 실용화의 기치를 올렸다. 리자를 설계한 천재적인 프로그래머인 빌 앳킨슨(Bill Atkinson)과 리치 페이지(Rich Page) 두사람은 스트브 워즈니악이나 로드 홀트 등과 함께 획기적인 기술 업적을 이룬 애플인이라는 애플 펠로우(Apple Fellow)로 선정되었다. 애플은 열두 곳의 유럽 판매망을 이용하여 새로운 제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2월
근대적인 개념의 새로운 시스템인 리자는

1만 달러라는 엄청난 가격과 느린 속도, 그리고 AppleII나 IBM PC와의 호환성 부족이라는 문제를 안고 있었고 폐쇄적인 설계로 인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함께 발표된 AppleIIe는 AppleIII의 개발에 회사의 모든 관심과 힘이 집중된 가운데 몇몇 뜻있는 개발자들이 경영진과의 마찰을 빚어가며 비밀계획으로 추진된 결과의 소산으로

1,359달러의 가격으로 AppleIII에서 리자로 이어지는 부진을 만회하며 애플 사용자들의 커다란 환영을 받았다. IBM PC의 공세가 거세어지면서 애플사는 AppleIIe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판매가 심각할 정도로 격감하는 상황에 이르렀으며 애플 컴퓨터를 팔던 상점들은 문을 닫거나 IBM PC를 판매하는 상점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4월
애플 컴퓨터의 판매가 부진한 것에 당황한 스티브 잡스는 보다 유능하고 경험이 많은 경영인이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펩시 콜라의 사장이었던 존 스컬리(John Sculley)를 애플의 새로운 의장이자 대표(CEO)로 영입하였다.


5월
애플사는 미국 경제계 시사 잡지인 Fortune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중에 411위로 랭크되었으며 교육용 시장 공략을 위하여 아이들을 위한 애플 프로그램 (Kids Can’t Wait)이 발표되어 그해 9월까지 1만대의 AppleII 컴퓨터가 캘리포니아에 보급되었다.
6월
100만번째 AppleII가 발표되어 ‘Kids Can’t Wait’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하며 리자의 개정판 시스템에 마지막 박차를 가하는 연구가 계속되었다.
7월
애플과 제네랄 일렉트릭 신용 회사의 계획이 시행되어 구매자들은 애플사 제품의 구매시 크레디트 카드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9월
애플 고용자들은 기술을 경험할 수 있는 EVA(Employee Volunteer Action)단체를 결성하였다.
10월
프로그램 개발의 활성화 및 사용자 서비스책의 일환으로 애플 관련 개발자 지원 프로그램인 APDA 프로그램이 시행되어 많은 개발 업체의 호응을 받았다.
11월
워드 프로세서, 스프레드쉬트, 데이터베이스 등의 어플리케이션이 하나로 합쳐진 통합 프로그램인 AppleWorks가 발표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12월
AppleIII의 기능을 보완한 AppleIII+ 컴퓨터가 두 배의 해상도를 자랑하며 발표되고 도트 방식의 ImageWriter가 발표되었다. 애플은 고등학교와 K-12학생을 위한 전국적인 컴퓨터 경진 대회의 스폰서가 되어 교육용 시스템으로서의 애플을 계속적으로 홍보하는 마케팅에 주력하였다.
